

사흘 전인가, 나흘 전인가, 이 곳 기상청은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래서인가, 어쩐지 파란 하늘을 본 것이 아주 오래 전 일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굳이 장마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비가 오는 이곳은, 지금은 하루 겨우 개었다가 이삼일 비가 오고, 다시 개고 하는 날씨의 연속이다. 일조량이 좋을 때는 사람을 바짝 굽기라도 하려는 듯 기세좋던 태양이 - 한창 더울 때의 이 곳은 스리랑카보다 더 덥다고들 하니까 - 며칠 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쩐지 내 몸도 머리도 무거워졌다. 몸이야 햇빛을 못 쬐서 그런거고, 머리는 대체 왜 무거운고 하니 이제 곧 눈 앞으로 다가온 귀국과, 따라서 나도 맞닥뜨리지 않으면 안 될, 얼핏 보아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한국의 상황들과, 그 선택들 사이에서 어물어물거리고 있는 내 자신, 이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금방 밀려오는 아쉬움과 한 편의 후련함, 별 도움도 이익도 되지 않아보이는 쳇바퀴 도는 듯한 이 곳의 생활, 후회,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대체 평소엔 어디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금만 방심하면 곧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탓이다. 아, 안그래도 나는 심각한 에고이스트에 온갖 오욕번뇌에 시달리는 연약하디 연약한 갈대같은 사람이거든 나는, 그러니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래, 라고 처절한 눈빛으로 빌어도 봤지만 이런저런 잡생각들은 내 부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번잡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이라고 이 판국에 평탄하게 바람 잘 날리 만무하건만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는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만다.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들도 많고 당장 이 주변에도 고맙고 참 고운 사람들이 많아도 어쩐지 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든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한 번이라도 더 주저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가족에게는 폐를 막 끼쳐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기대게 되는 건 역시 가족이다. 먼지바람 부는 사막의 한 가운데 내동댕이 쳐져 있어도 날 거두어 주는건 가족일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아무튼,
엄마는 내가 지금 한참을 돌아가고 있는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머리가 복잡한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고비고비마다,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험한 길을 선택한 것은, 사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고비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아마 난 그 때마다, 물론 좀 많이 망설이긴 하겠지만, 종국에는 또 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야 말 것이다. 엄마 말에 의하면 그게 내 팔자고 내 생각에 의하면 그게 나란 인간인거다. 그러니까, 이왕 돌아가는 거, 내가 선택한 거, 마음 다부지게 먹고 한 번 죽을 동 살 동 돌아가 봐라, 하신다. 똑바로 펼쳐진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 험한 길의 굽이 굽이마다 부딪혀 보기도 하고, 눈물도 흘려보고, 그 와중에 여유도 가져 보고, 좋은 경험도 해 보고 좋은 인연들과도 만나면서,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그러다보면 어떻게든 될 거다. 우리가 언제 미래에 대한 계획 세워가며 살았냐. 눈 앞에 닥친 일 부터 일단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어서, 그래, 어떻게든 될거다. 그리고 잘 될거다. 결국에는.
위와 같은 이런 저런 생각들로 nautes03.com의 4주년을 맞았습니다(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정국에 이런 개인적인 일로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게 좀 부끄럽습니다만).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언제나 지켜봐주시고 부족한 저를 격려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부터 더욱 노력하는, 그러면서도 한층 여유를 갖는 제 자신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로 고맙습니다.
권진원 - 살다보면
살다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 너무도 많아
나도한번 꿈같은 사랑 해봤으면 좋겠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걱정 멀리 던져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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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운영하셨군요. 구독료는 못드리지만;; 앞으로도 들르겠습니다~
2008/06/07 18:39들러주시는 것 만으로도 구독료 이상의 값을 하는걸요. 고맙습니다 ^^
축하축하. 한국도 많이 더워지고 있으니 거긴 더더욱 심하겠구만.
2008/06/10 01:06항상 건강하게 지내렴
덥고 습하고 그렇죠 뭐;; 오빠도 건강 조심하세요 ^^
그런 위치를 경이롭 위해 많게의 감사! 너는 위치를차가운 만들었다!
2008/06/10 17:08...4주년 축하해ㅋ
본능적으로 코멘트를 지울 뻔 했다 -_-;;;
고마워 오빠 :D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웃었어요
경축! ^^
2008/06/10 22:22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
nautes 03 애독자입니다. 4주년 축하드립니다.
2008/06/13 01:31(저 노래는 정말 너랑 잘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