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minal Minds'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6/08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 (2)
  2. 2007/04/01 내 마음에 평화를 (2)

What's up?
무슨 일 있어요?

Bobbi baird asked me a question that's sticking with me.
바비가 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What was it?
그게 뭐였는데요?

She asked me how they could do it. How those men could...hunt and kill people in the woods.
그녀는 어떻게 그들이 그럴 수 있냐고 물었죠. 어떻게 인간이... 숲에서 다른 인간들을 사냥하고 죽일 수 있냐구요.

What did you tell her?
그녀에게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That they don't think like we do. But...the truth is...that we do think like them.
그들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생각하잖아요.

Yeah,we do. Because it's our job. We need to know how it feels.
그래요. 왜냐하면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우린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 지 알아야 하니까요.

We hunt these people every day. The question is,how different are we? Us and them?
우리는 매일 그런 사람들을 사냥해요. 하지만 문제는, 대체 우리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우리와 그들 사이에?




- Criminal Minds Season 2 Episode 21, Open Seas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 중 하나는 '나'와 '남'을 구별하는 의식일 것이다. 피아간의 구별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후 부터 가장 명징하게 발달해 온 의식, 아니면 의식 이전의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생각하는 인간, 그 하나의 개체는 온전히 하나로서 존재한다. 고로 아예 세상만사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하여 나 자신조차도 철저히 공(空)하다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라. 남의 머리속에 들어가 그 사람 행세를 하며 육체를 조종하고 인생을 대신 산다는 엉뚱한 발상의 그 영화야말로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한 인간은, 설사 다른 이의 머리속을 자유자재로 들락날락거린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자신'으로 존재할 뿐이다. 머리속에 들어앉아 육체를 조종하는 건 말 그대로 '그 사람 머리속에 들어앉은 나'이지 나비가 장주되고 장주가 나비되는 식의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분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미국 C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Criminal Minds의 주인공들이다. FBI의 행동분석팀(BAU, Behavioral Analysis Unit)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설정된 이들은 프로파일링, 즉 범죄자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부터 수사를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범죄를 해결한다. 그들은 범죄현장에서 사람들이 남긴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반추하며 끊임없이, 만일 내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할까를 생각해 내야만 한다. 그래야 범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짓을 하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앞질러 파악하고 다음에 일어날 더 큰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나'와 '남'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서야, 그리고 실제로 그 경계 허물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행위를 통해서야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의 일이야말로 '나'와 '남'의 분명한 경계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시리즈 전체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인식 중 하나는 '나'와 '당신'의 끊임없는 구분짓기다. 원래 '범죄'라는 것 자체가 집단생활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일탈행동, 즉 '우리'가 될 수 없는 '너희'들의 행동들을 일컫는 것이매, 범죄자의 속마음을 읽어내어 범죄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나'와 '그'는 결국 다른 사람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고서야 가능한 것이다. 행동분석팀의 많은 대원들은 종종 범인의 머리속을 읽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줄 지라도, 절대로 그들은 범인과 동화되지 않는다. 범인과 동화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나' 아닌 또 다른 '나', 그러면서도 '당신'이 될 수 없는 '내'가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때부터 그들은 수사관의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남'과 '나'의 경계선 위에서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줄을 놓아버리거나 줄에 매달리거나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매 화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물음을 던지는 것도 사실은 온전히 범죄자 그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부분들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인간적인 - 이 때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미 철철 넘치는, 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성질로 쓰인 것임을 모두 아시리라 믿는다 - 이 드라마를 보면서 밑도끝도없는 인간의 잔학성에 몸부림 치면서도 한편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나'가 '당신'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라는 물음이 허용되지 않는 잔인한 범죄를 끔찍하다 생각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가 바로 '나 자신'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잘생긴 주인공이나 화려한 액션이나 무릎을 치며 탄복할 만한 최첨단 수사기법도 나오지 않는, 일부 시청자들에 의해 '지루하다'는 혹평을 들어 마지 않는 이 드라마를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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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8 15:24 2007/06/08 15:24
liking/tv dramas l 2007/06/08 15:24

방금 '생활인 찬가'라는 제목으로 이런 저런 글을 쓰다가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글을 싹 다 지워버렸다. 할인마트의 특급 상술에 익숙해지고, 하나 둘 씩 할 수 있는 요리가 늘어나고, 하는 식의 생활인 찬가 따위 다 무어냐, 실제로 이런 생활을 찬양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이러한 생각들이 스스로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마음과는 다르게 신경은 예민해져만 가고 있다.

그래서, 잠시나마 모든것을 잊고 마음에 평정을 되찾고자 드라마 속으로 도피했다. 최근 자주 보는 드라마는 연쇄적 살인사건 등을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하는 Criminal Minds와 법의학 인류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Bones, 그리고 수사물이자 더불어 법정물이기도 한 Law and Order 시리즈 등이다. 이 중에서 나는 특히나 크리미널 마인즈 시리즈를 선호하는 편이다. 수사물 자체로 보자면 긴장이 조금 떨어지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가끔씩,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대사들이 나와서 내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오늘의 에피소드 역시나 그러하였다. 참전용사였던 용의자는 건물 및 도로공사의 소움으로 인해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며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는 아직까지 전쟁이 진행중이며, 자신이 그 전쟁터에 홀로 남아 생존을 위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크리미널 마인즈를 즐겨 보시는 분들을 위해, 그리고 아직까지 이 에피소드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나를 비롯한 모든 분들을 위해, 말 그대로 '내 마음의 평화를' 구하고자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만은 꼭 이 포스트에 옮겨두려 한다. 자신의 괴로움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참으로 천벌받을만한 일이긴 하지만 남의 괴로움에 파고드는 일이며 거기에서 우리는 일종의 삶에 대한 통찰마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치너와 기디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짧은 대화 한 토막이다.

HEY.
여기 계셨군요.

IT'S QUIET.
조용하군.

CONSTRUCTION'S TAKING THE REST OF THE DAY OFF TO HONOR THE VICTIMS.
업자들이 말하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오늘 하루동안은 공사를 중단한답니다.

YOU KNOW, THE FIRST REPORTED WAR WAS... 2700 B.C.
자네 그거 아나, 최초로 기록된 전쟁은.... 기원전 2700년 전의 일이었지.

PROBABLY EARLIER WARS, BUT...WRITING HADN'T BEEN INVENTED YET.
물론 그 전에도 전쟁은 있었겠지만, 문자가 그때 당시엔 아직 발명되지 않았어.

ALMOST 5,000 YEARS OF KILLING EACH OTHER.
거의 5000년동안 우리는 서로를 죽여왔군요.

ONE THING HUMAN BEINGS HAVE BEEN CONSISTENTLY GOOD AT.
인간이 꾸준히 잘 해왔던 거의 유일한 일이라 할 수 있지.

WE DID EVERYTHING WE COULD FOR HIM, YOU KNOW.
우리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어요, 기디언.

YEAH.
그렇겠지. 하지만,

SOMETIMES KNOWING THAT JUST ISN'T GOOD ENOUGH.
때때로는 그걸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네.

I KNOW.
그렇죠.

"IF THERE MUST BE TROUBLE, LET IT BE IN MY DAY, THAT MY CHILD MAY HAVE PEACE."
"만일 분쟁이 있어야만 한다면, 내 세대에 있게 하라. 나의 아이들은 평화롭기를."

- THOMAS PAINE
- 토마스 페인


미선이 - Shalom

내 마음에 평화를 내 마음에 평화를
사람다운 사랑을 사람다운 사랑을
내 머리에 평화를

내 마음에 평화를
정의로운 분노는 악인에게 저주를
내 머리에 평화를

외로운 아이에겐 따뜻한 엄마의 눈을
갈 곳 없는 이에겐 다정한 친구의 집을
배고픈 사람에겐 따뜻한 사랑의 밥을
비틀린 아이에겐 넉넉한 아빠의 품을

이제 노래를 불러볼까 불러볼까
이제 노래를 불러볼까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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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1 10:23 2007/04/01 10:23
liking/tv dramas l 2007/04/0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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