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입학에 비해 그리 환영받는 결과도 아니었고 면접을 보고 난 후에도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괜찮은 선택을 한 건지 심각히 고민했지만 아무튼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가 축하해 주셨다. 후회하지 않는건 이제 내 몫이겠지. 우선은 졸업논문부터 좀 마무리 하고, 차근차근 앞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대학 입학에 비해 그리 환영받는 결과도 아니었고 면접을 보고 난 후에도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괜찮은 선택을 한 건지 심각히 고민했지만 아무튼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가 축하해 주셨다. 후회하지 않는건 이제 내 몫이겠지. 우선은 졸업논문부터 좀 마무리 하고, 차근차근 앞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 type | sum |
|---|---|
| 글 | 252 |
| 댓글 | 1,432 |
| 방명록 | 153 |
| 받은 트랙백 | 13 |
| type | sum |
|---|---|
| 오늘 | 201 |
| 어제 | 290 |
| 7일 평균 | 321 |
| 총방문자 | 221,451 |
정말 고맙습니다.
더 힘내서 6주년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한가지를 오랜 시간동안 하기란 정말 힘든데 대단하셔요!!
사진의 "기운내"라는 단어가 상당히 인상깊네요~
5주년 축하드려요~ ^^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치미님도 더운 여름, 기운내세요!
기운내!
고마워, 도반씨도 기운내!
와, 축하해!!ㅋㅋ
고마워 히히. 요즘 뉴스나 신문에서 '웅숭깊은'이란 표현을 많이 쓰더라. 그 때마다 니 생각해! 웅숭깊은 웅숭씨, 기운내!
아 민욱님의 nautes03.com이 어느덧 5주년이군요.
전 계속 n주년 시기에만 들르게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해지네요;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것 만으로도 정말 기쁜걸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용님도 기운내세요!

논문 드래프트 발표를 마치고 혼자 <마더>를 보러갔다.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플란더스의 개>와 <도쿄>를 제외한 봉감독의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셈이 되었다. 하긴, 워낙에 화제작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들이었으니 특별하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이번 영화 역시 반쯤 정도는 봉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또 반쯤 정도는 이걸 안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러 간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물>만큼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나 표정에서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묻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그 '찝찝함'이 묘한 상쾌함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이 영화가 몇 주 전의 내 자신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을거다.
그 문제의 '몇 주 전', 끝이 보이지 않는 폭식과 그에 따른 강박적인 보상행동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은 무척이나 지쳐서 그 어둡고 억압된 기운을 남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모든 일의 원인을 내 자신이 아닌 밖에서부터 찾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먹는 일로 내 심리적 공허감을 채우려고 하는 건 어릴 적부터 내게 짐 지워진 과도한 책임감이나 어른스러운(혹은 어른스러워져야만 한다는)이미지 때문이야, 하는 생각에,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무관심이라 착각할 정도로 무뚝뚝했던 아빠와, 아빠가 주지 않는 감정과 역할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만 했기에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에 늘 시달려오셨고 급기야는 그로 인한 각종 신체징후들까지 보이고 계시는 엄마와, 그리고 아직까지 철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조금 복잡하다 싶은 가족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동생들을 나는 내 자신의 인생을 더욱 앞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 족쇄인양 여겼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아빠께서 집에 거의 안 계시는 상황에서 엄마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장녀인 내가 상당 부분 나누어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엄마에게 애착을 가지는 만큼이나 내 무의식 한 켠에서 또한 엄마를 미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나 나나 지독히 외로웠다. 우리는 둘 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내보이고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을 남과 나누는 데 무척이나 서투른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그 서투름을 애써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긍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양 생각했다.
결국 고인 물은 썩고 썩은 상처는 곪으며 곪은 상처가 그러하듯 일은 갑자기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날도 나는 배가 터질 때 까지 잔뜩 먹고는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그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았으면 거짓말로라도 '여긴 아무 일 없고 나는 잘 있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쳤을 텐데, 그 날 따라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딸은 지금 폭식증 때문에 학교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담을 몇 번 받아본 결과 상담 선생님께서 그 폭식증의 원인이 아주 옛날부터 느껴야 했던, 가족에 대한 필요 이상의 책임감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에게서 사과나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딸의 투정에 덮어놓고 오냐오냐 해 주실 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받고 있는 상담을 정신과 치료와 착각하셨던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딸이 스스로를 어쩌지 못해 남의 도움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셨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 말로 다툼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 시간이 넘게 소리치고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그 당시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말들을, 다소 잔인하다 싶을 정도까지 모두 다 퍼 부었다. 그리고 소강상태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의 유약함과 책임회피를 꾸짖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고 계셨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써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속이 한결 편안해 졌다. 모든 것은 원만히 잘 해결되었다고, 외려 상황이 이전보다 더욱 나아졌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 엄마가 뇌졸중 때문에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것, 행여 내게 부담을 줄까봐 엄마는 엄마의 입원 소식이 내게 전해지지 않도록 철저히 가족들 입단속을 시켰다는 것, 그래서 엄마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다 되도록 나 혼자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는, 더 나아졌다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음이 밝혀졌다. 생각해 보면 괜찮을 리가 없을 터인데. 엄마는 무쇠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였는데. 내가 느끼고 받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엄마도 책임감을 느끼고, 엄마도 위로받고 싶고, 엄마도 상처 입고, 그래서 엄마도 아픈 것은 당연한 건데.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애초에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되어버리는 순간 여성성이라거나 욕망이라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박탈된 채 그저 신과 같은 숭고하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강조되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사회의 잉여인간처럼 여겨지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야, '어머니'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의 속성이 '아줌마'라는 말에 담긴 경멸과 멸시의 뜻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신은 어디에나 있어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대신 세상에 내려 보내셨다는 말도 웃기다. 어머니는 신이 아니다. 어머니도 사람이다. 나나 어머니나 결국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잘난 체 하며 남들에게 는 잘도 지껄여대면서도, 지금껏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에게 완벽한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그러한 이미지에 맞춰 나에게 뭔가 해 주기를 계속 요구해왔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모르는 사이'라는 말은 변명이다. 나는 이미 표리부동한 내 자신을, 그리고 이 못난 딸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체 했다. 나 하나 편하자고.
하여튼 제목에 영화 이름을 붙였으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 나에게 누가 누구를 죽였고 반전이 뭐고 하는 것이라든가,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부터 꾸준히 나오던,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식의 권력기관의 횡포, 있는 놈에게 비굴하게 없는 놈에게 가혹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풍자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게 흥미있는 것은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끝끝내 이름 한 줄 나오지 못한 '도준 모' 김혜자씨의, 얼핏 보면 맹목적이고 신성하며 숭고하게까지 보이는 모성애의 정체는 결국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늘상 박아두었던 죄책감과 부채감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아, 비록 이름도 여성성도 욕망도 모두 박탈당했지만 결국 '마더'는 신이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안도했다. 내가 두 시간동안 봐 왔던 인물은 결국 그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있고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처럼, 나의 엄마처럼 괴로워 하는 상처받고 나약한 한 인간이었던 거다. 그러한 인간을 '어머니'라는 단어 속에서 끄집어 내어 그려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 <치유하는 글쓰기: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없이>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미숙하다. 고통과 상처 때문에 성장을 멈춘 내면의 어린이이자 존재하는 이상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외치면서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아댄다. 그래서 우리의 자식들도 수치심과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얼룩진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들어내면서 성장하게 된다...(중략)...그런 점에서 우리 내면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꽉 찬 고아원이다. 대부분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가 그 많은 고아를 만들어주었으며, 가해자는 부모 속에 숨어 있던 내면의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물리적인 힘만 세진 부모의 내면아이들이 분노의 주먹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휘두르는 유형무형의 폭력 만큼이나 자식 역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무리한 역할을 강요하며 충분히 서로를 상처입히며 살아간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때로는 혼자서 멋대로 괜찮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는 길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서로에게 관대해 지자.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어머니와 자식도 아니고, 어른과 아이도 아니고, 바보와 안바보도 아닌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고마워. 이렇게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분명 할 수 있을거야 ^^
동치미
2009/06/21 22:15 Delete Reply Permalink
오오!! 축하드려요!!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석사생활은 당시엔 후회하더라도,
졸업하면 후회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
즐거운 학교생활 이어나가세요.~
corvo
2009/06/21 23:02 Delete Reply Permalink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번에 님과 같은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합니다. 저는 산업공학과 전공이에요. 그런데 저와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 안나는군요. :)
도반
2009/06/22 02:13 Delete Reply Permalink
축하드립니다! 저와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 안나는군요. :)
anyway,
2009/06/22 12:20 Delete Reply Permalink
축하해요! :)
suddentime
2009/06/23 18:54 Delete Reply Permalink
축하해! 대학원에 가는구나ㅋ 남민욱이 졸업이라니 하긴 내가 졸업한지도 벌써 2년이네ㅋ
Demian Chang
2009/06/28 13:35 Delete Reply Permalink
블로그 5주년에, 대학원 진학까지- 축하해!
모든 일들 다 잘 풀리길! :D
likeablue
2009/06/29 00:35 Delete Reply Permalink
Welcom to the hell ... 크크크크
유경
2009/06/30 03:51 Delete Reply Permalink
축하해요 민욱언니. 오랫만입니다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