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diaries'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11/04 길고양이의 삶을 살다
  2. 2008/07/30 무책임(無責任)
  3. 2007/04/15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2)
  4. 2007/01/08 글을 쓴다는 것 (4)
  5. 2006/10/20 호주에서 온 편지
  6. 2006/10/18 겸손의 미덕? (4)
  7. 2006/10/10 강허달림 - 독백 (4)
  8. 2006/10/02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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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일 일요일

나는 몇 시간 후 가출을 단행할 것이다. 여기서 쓰인 '가출'이라는 단어는 정확하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친구를 한 명 만들어 그 친구와 있지도 않은 저녁 약속을 이유로 집을 빠져나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마한 카페 같은 곳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무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몇시간 정도 노닥거리다 들어오는 행위'를 뜻한다. 벌써 읽을 책도 골라놓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들고 나가, 내키는 대로 둘 중 하나를 골라 읽거나 여유가 된다면 둘 다 읽고 들어올 생각이다. 그 몇 시간 동안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대신 내가 치러야 할 것은 폭리일 것이 뻔한 -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피와 땀이 서린, 가혹한 노동 착취의 결과물일 것이 뻔한 - 최소 몇 천원의 커피 정도가 될 것이다. 단지 자리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할 뿐, 결코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좀 아깝고 속이 쓰리긴 하지만 괜찮다, 지금 나에게는 그 몇 천원보다 혼자 있을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니까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김혜자씨처럼 '휴가를 주세요!'라고 당당히 외칠 처지는 못 되지만 나도 나에게 쉴 시간 정도는 좀 주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했던, 내가 과연 가족들과 잘 어울려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태산같은 걱정들을 보란듯이 뒤엎고 요즘 나는 겉으로 본다면 아주 성공적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다시금 편입되어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바르고 정확한 삶을 살고 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단지 아침 늦게까지 이부자리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것이 싫어 새벽 다섯시, 어쩌다 늦잠을 잔다고 해도 여섯시만 되면 일어나 아침밥을 하고 가족들의 식사를 챙긴 후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약간의 시간을 보내다 학생들을 가르치러 간다. 이런 나날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되고, 일요일은 그나마 저녁시간에 수업이 없으므로 가끔 주말 연속극을 보기도 한다. 아, 내가 가르치던 남학생 녀석 하나가 질풍 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터라 결국 수업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앞으로 수요일과 토요일에도 수업을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대신 지갑은 좀 빈곤해졌다). 부모님, 특히 엄마는 '갑자기 철이 들어 온 딸'의 가족 편입을 두 손 들어 환영해 주신다. 요즘 우리 가족들의 생활은 점점 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나 역시, 성공적으로 가족의 일원이라는 역할 수행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해 하기도 하고 일종의 성취감이랄까 하는 것 까지 느끼고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결코 나는 '철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저 의무에 따라서 충실히 역할극을 하고 있을 뿐, 오히려 더욱 더 미숙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어제 오늘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음식들을 나도 모르게 마구 주워 먹다 기분이 나빠져 모두 게워내 버리는 만행을 되풀이 하고서야 그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나는 타인 - 설령 그것이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 지라도 - 과 함께 살도록 고안된 생물이 아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에 사무쳐 못견디게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생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체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 생활의 대부분이 타인들과의 시간과 관계, 특히나 어떠한 역할과 거기에 기대되어지는 의무 따위에 얽매여 있는 상황이 되면, 결국 무척이나 힘들고 지치고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에게는 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관찰되거나 간섭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 차라리 외로움에 사무쳐 몸부림 치거나 고함치거나 울부짖을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이. 철썩같이 내 장래와 미래에 기대를 걸고 아낌없이 후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 그리고 나는 사실 그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 가끔은 정말로 그러하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마시지도 않을 커피에 대한 값을 치러가면서라도 가출을 해야겠다. 오늘이라도 꼭 좀 그렇게 해야겠다.

얼마 전 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는 길목에서 손바닥만한 아기 길고양이와 종종 마주친다. 얼룩덜룩 누런 털에 흰 양말을 신고, 동그란 눈이 도드라져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는 녀석이다. 원체 고양이가 추위에 강한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부쩍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아침 저녁 바람에 고 조그만 몸이 괜찮을까 싶어 뭔가 먹을 것이라도 좀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어 보지만, 그 녀석은 사람이 무서운 건지 싫은 건지 아무튼 언제나 내민 내 손이 무안하게스리 휙 돌아서 자기 갈 길을 가 버린다. 그러한 나날들이 하루 이틀 되풀이되다 보니 그래, 곧 얼어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것이 너의 신조라면 너 좋을대로 하렴, 하는 체념 비슷한 감정마저 느끼며 한 때 '고양이과 인간'이 되리라 다짐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 100% 그 다짐을 실행할 처지는 아니지만 오늘같은 날 하루 정도는 앞뒤 재지 않고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그 길고양이와 같은 고립된 시간을 즐겨 보는 것도 그리 염치 없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 단 몇시간 만이라도 길고양이의 삶을 좀 살아봐야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가 보고싶어했던 영화 한 편을 빌려서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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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4 13:30 2008/11/04 13:30
old diaries l 2008/11/04 13:30
2008년 4월 17일

이번학기엔 정말로 좀 독해져보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늘상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듯 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수요일 오전엔 수업이 없어 늦잠도 좀 잘 수 있고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오늘은 고타츠에 콕 틀어박혀 내일 있을 일본어 회화수업 숙제를 하고 있는데, 이 숙제라는 것이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형용사의 의미를 사전에 실린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이용해 설명하는 것이다. 소탈한, 수다스러운, 얌전한...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여러 단면들을 지나쳐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いい加減な」라는 단어. 한국말로 번역하면 '무책임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책임한'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 주변인물의 예를들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오늘날처럼 무책임함이 넘쳐나는 시대에 막상 한 사람을 꼭 꼬집어 말하려니 선뜻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우선 나부터도 이 '무책임함'의 범주를 피해가기 어렵거니와, 각자가 가진 '책임'이라는단어에대한 역치도 전부 다르고 어떤 것을 '무책임하다'라고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다 같이 무책임이라고 뭉뚱그릴 수 있는 것에도 단순히 자신이 맡은 일에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이나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정말로 다양한 형태의 '무책임'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어떤 것을 무책임의 예라고 말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현재 내가 그나마 지금까지로서는 내 인생 최대의 '자신을 돌보고 책임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무책임이라는 단어에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혹시 도둑이 제 발저리는 것 마냥 뜨끔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사람이 생겨먹은 것이 쩨쩨해서 그런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지금까지도 숙제를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채로 그냥 이러고 있다.


이 일기의 일본어 번역은 이곳으로 http://blogs.yahoo.co.jp/nmuk_nautes03/13510679.html
この日記の日本語の翻訳はこちらへhttp://blogs.yahoo.co.jp/nmuk_nautes03/135106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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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5:57 2008/07/30 15:57
old diaries l 2008/07/30 15:57
2007년 3월 10일 오후 11시 35분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할 것이나,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 사이에서는 특히나 사소한 것들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법이다. 그리고 충분한 설명이나 별다른 언질 없이 무작정 맞닥뜨린 새로운 생활들은 무척이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갑자기 나에게 지워진 무언의 짐들과 책임감, 짧아진 수면시간, 누군가의 평가를 항상 염두에 둔 하나하나의 행동들은 나를 생각해주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 지금껏 내 수많은 엄살과 푸념과 과장된 수난사들을 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내 룸메이트의 부모님을 만나는 날이었다. 약간의 불편한 시간과 약간의 어색함이 흐르고, 애써 대화거리를 찾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녁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모녀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없는 사람인체 하였고 전적으로 청자(聽者)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꺼풀, 한꺼풀씩,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조금은 달라진 기분으로 서로의 접점에 다가가려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해를 걸러내고, 미움을 걸러내고, 과도한 애정이나 필요없는 측은지심따위도 모두 걸러내고 나면 비로소 한 인간과 한 인간이 남는다. 그 때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첩정리를 하다가 심하게 소화불량에 걸려 고생하기 바로 하루 전에 쓴 일기를 발견했다. 한동안 자기혐오의 극단을 달리는 생활에 시달렸는데 아, 한 순간은 저런 기특한 생각도 했구나 싶어 되려 새삼스럽다. 여전히 저 일기에 쓴 것 만큼의 평정심을 되찾지는 못하였지만 다행히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 문득 한참 후의 나 자신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덧> 에라토스테네스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 보기 [ 바로가기 ]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 보기 [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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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14:51 2007/04/15 14:51
old diaries l 2007/04/15 14:51
2006년 9월 2일 오전 4시 11분

말하기나 글쓰기는, 일단 그것을 토해내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내 활시위를 떠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한 번 토해놓은 이상은, 더 이상 그 말이나 글이 내 것이 아니다. 이후에 나는 어떤 말이나 글을 덧붙임으로서 그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거나 책임을 질 수 있겠지만, 이미 뱉어놓은 말 그 자체만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사고작용을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나 글을 뱉을 때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쉽사리' 내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 아마도 말이 가지는 일회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쉴새없이 뱉어내는 수많은 말들 중 대부분은, 아마 입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나와 당신 모두로부터 잊혀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글쓰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나는 글을 통해 나의 일부에 대한 흔적이 명확히 남는 그 사실을 두려워 하고 있으며, 그 글을 통해 사람들이 나조차도 모르는 내 자신들을 읽어낼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내 부분들에 대해 나는 당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나는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젠 더 이상 내가 당신에게 해 줄 말은 바닥이 났다. 다만 난 당신에게 내 초라한 바닥을 보이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침묵을 지키면 지킬수록,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목마름은 더해가고 있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생각에 성실하지는 않더라도 언제나 '좀 더 나은 결과'를 갈구한다. 결국, 말을 뱉고 글을 쓰는 행위보다 침묵을 지키는 행위가 나에게는 더욱 어려운 것이고, 따라서 나는, 언젠가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침묵 나흘째. 침묵을 고수하는 주기가 길어질 수록 가슴은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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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7:45 2007/01/08 17:45
old diaries l 2007/01/08 17:45
2006년 4월 15일 오전 9시 51분

한글 수업을 하고 나오는 길목에, 성희언니가 보낸 편지 한 장이 알림판에 붙여져 있었다. 성희언니는 지금 호주에 가 있다. 그냥 어학연수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도 하면서 연수를 하는 모양이다.
같은 남부교육센터 강학일 뿐 아니라 같은 반 선배이기도 한 성희언니는, 혹자의 말에 따르면 '너무 머리가 좋아 세상 모든 걱정을 그러모으는 사람'이다. 그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머리가 조금만 좋으면 자기 앞가림만 해도 되는데 말야. 그 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아. 그래서 자기 걱정만도 모자라 남 걱정까지 사서 하지. 그 말을 듣고보니 정말로 성희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걱정이 아예 없어지면야 가장 좋겠지만 만약에 걱정이란게 꼭 있어야만 하는거라면 언니는 이제 그만 언니 걱정만 좀 했으면 좋겠다.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언니는 지금 온전히 자기 생각만, 자기 걱정만 하고 있게 되었을까. 어쨌든 멀리서 보내 온 짤막한 엽서 한 장을 읽고 나서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하였다.

남부 사람들에게!
후원인 소식(e-mail로)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일 수업과, 새로운 사람이 드나들고, 새 학기 준비로 달력이 빡빡할 만큼 많은 회의와 일들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구나 - 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양털을 깎으러 간다며 법썩을 떨던 저는, 지금 호주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유명관광지'(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에 나와 유명한) 에어즈록으로 가는 길목의 휴게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원주민들한테 술팔고 치킨팔고, 관광객들한테 샌드위치 팔고, 밤에는 근처 카우보이들이랑 술마시면서 재미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갈때까지 양털깎을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오늘은 쉬는 날이라, 우연히 묘한 인연으로 얻은 소주 한 팩을 놓고 너구리를 끓여 숟갈을 꽂아놓고 같이 일하는 그리스 아저씨한테 '우리'는 이렇게 숟갈 꽂아놓고 밤새마신다고, 갈비탕 곱창 삼겹살.. 그리고 매일 한 방에 앉아 정신놓을때까지 마셨던 이야기를 하니 - 매일 이웃들과 파티가 끊이지 않는 예전의 그리스와 똑같다며, 그런 '너네'는 아직 살만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우리'들이 생각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뒤늦게 엽서 한장 보냅니다.

이번학기, 길었다면 길었을 호주생활을 마치고 성희언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얀 피부가 조금은 검어지고 턱선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던 머리도 짧아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학기면 졸업을 한다고 했다. 입학할 때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던 사람이 한동안 내 곁에서 사라졌다가, 뭔가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 다시금 나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묘한-기분이었다.

하지만 피부색이 달라지고 머리 길이가 짧아졌다고 해서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 또 학교를 오가다 만난 언니는 나에게 남부교육센터에서 강학활동을 했던 사람들끼리 동문회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아주 조금이라도 센터에 도움이 되는 데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함께 했던 나날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인연은 계속되고 사람과의 끈도 계속 이어지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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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18:52 2006/10/20 18:52
old diaries l 2006/10/20 18:52
2006년 3월 14일 오전 3시 45분

또다시 교만해지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관계를 비롯한 온갖 세상만사를 대할 때, 자기를 중심에 놓고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언제나 내가 잘났고 내가 옳다는 아집과 독선, 그것이 바로 교만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걸어온 날 보다 걸어가야 할 날이 더 많고 해 놓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이 더 많다. 게다가 내가 쌓아 온 것들은 모래밭위에 간신히 자리 잡고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것들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말자. 늘 '나'라는 존재 밖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자.

2006년 2월 28일 오후 5시 45분

어제 새벽, 마지막 한 걸음을 잘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지막 한 걸음, 그것은 하나의 마무리일 뿐 아니라동시에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늘 마지막 걸음 바로 전, 혹은 그보다 두세걸음 앞에서 그만 멈춰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요즘은 반대로 한없이 의기소침해지고있다. 어쩌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내달리는지 원. 능력있는 사람이 못되면 좋은 사람이라도 되고 싶은데, 이도 저도 아니면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 내가 참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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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00:39 2006/10/18 00:39
old diaries l 2006/10/18 00:39
2006년 9월 7일 0시 55분

딱히 노래로 먹고 살겠다는 결심을 해 본적은 단 한번도 없으나,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은 점점 커진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기교가 뛰어나거나 성량이 풍부하거나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다고 해서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닐 터 - 이런 것들은 단지 어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남들보다 조금은 유리한 조건들에 불과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좋은 노래는 저런 조건들과는 별개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마음울림은 결국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내 노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가 듣고싶어졌는데 딱히 뭘 들어야 할지 모를 때, 옛날에 사용하던 스팸 투성이 블로그에 가서 당시에 올렸던 음악들을 하나 둘 들어보곤 한다. 당시의 심정들, 당시의 상황들, 당시의 기억들 - 고스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드문드문 섞여 들어오는 몇개의 파편들을 조심조심 골라낼 때면, 가끔 난 미친 듯 울고싶어진다. 그래서, 할 일은 산더미같은데, 오늘은 강허달림의 독백을 돌려들으며 몇십분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며 치받쳐오는 울음을 가만히 삭히었다.

노래하고싶다.나의어제와나의오늘과나의내일을.

덧> 강허달림의 독백은 바로 밑 포스트에서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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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03:06 2006/10/10 03:06
old diaries l 2006/10/10 03:06

2006년 7월 31일 오전 2시 9분

예전에, 문성근씨와 강수연씨가 나온 영화가 한 편 있었더랬다. 제목은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문성근씨가 인기 DJ로, 강수연씨가 불치병을 앓는 고등학생 소녀로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전의 영화라 - 그것도 나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아니라 유선방송에서 방영해주던걸, 아주 어렸을 때 우연히 보게된 것 뿐이었다 -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봤더니 그것이 실화란다. 90년 당시 김창완씨가 진행하던 '꿈과 음악사이에'라는 라디오프로그램에 보내진 사연을 엮어 책도 나왔다.

오늘 하루도 그냥저냥 보내고 몇토막의 일상적인 대화를 사람들과 주고받다가, 문득 내 나이가 어느덧 스물 둘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땐 자신의 나이를 기억 못하는 엄마 아빠를 보고 '이상하다, 왜 자기 나이를 기억못할까' 했는데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니 그게 당연한거였다. 나에겐 한시 다음에는 두시가 오는 것 만큼이나 어제가 가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관성적으로 몸을 맡기다 갑작스럽게 문득 문득, 과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새삼스레 확인할 뿐이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자신의 위치에 놀라기도 하고 한심함도 느끼면서.

매일 매일 거울을 봐도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당돌한 꼬맹이 하나가 벌써 스물 둘이나 되었다는 걸 새삼스레 인식하고는 어릴적 보았던 영화장면들을 하나둘씩 애써 되새겨보려 노력하면서, 책에서 몇 구절들을 발췌해놓은 웹페이지들을 돌아다녔다. 예전엔 '어려서', 그리고 지금은 '남의 일이라서' 마치 먼 나라에서 쓰여진 소설인양 그저 그렇게 무덤덤했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으니 당시 열일곱살이던 민초희씨도 이미 이 세상엔 없을 것이고, 민초희씨의 사연에 슬퍼하던 애청자들도 이젠 훌쩍 커서 어쩌면 당시 민초희씨만한 아들딸들의 부모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옛날 추억을 더듬어보기도 하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시간엔 그 옛날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겠지. 누군가가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스무살을 떠나보내고, 서른살, 마흔살을 떠나보낼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산울림 -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거예요

생각나면 들러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거예요


생각해보면 어릴적 꿈 중 하나는 대학에 가서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 열린 대학가요제를 TV로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이제 TV에서 보는 저 사람들이 더 이상 '언니, 오빠들'이 아니라는 것 - 저 사람들이 다들 내 또래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스무살과 나의 스무살, 그들의 스물한 살과 나의 스물한 살, 그들의 스물두 살과 나의 스물두 살... 이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 끝내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 저 일기를 쓰고 난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의 주연은 강수연씨가 아닌 윤연경씨라고 한다. 웹검색을 해보니 강수연씨랑은 퍽 다르게 생겼던데, 어린 눈에는 비슷하게 보였었나보지.

* 10월 2일부터 10월 8일까지 추석연휴를 즐기러 대구에 내려가 있을 생각. 이 글 보시는 분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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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2 00:16 2006/10/02 00:16
old diaries l 2006/10/0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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