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장예모 감독의 최신 개봉작 이야기에서 중국의 제비집요리 이야기와 앞으로 펼쳐질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한창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전두환 기념공원 이야기가 세상에 대한 불신과 집단의 광기에 대한 두려움을 싹틔웠다. 어떤 이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다고 분노했다. 어떤 이는 세상의 어지러움에 민감해지는 것은 좋으나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까지 화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상대를 달래었다. 난세를 헤쳐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사료되는 태권브이가 기름으로 돌아가는거냐, 원자력으로 돌아가는거냐, 광자력으로 돌아가는거냐에 대한 논란이 잠시 있은 후에 대화는 다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무렵에 다달았다. 그 때,

"0106xxxxxxx님께 보낸 문자는 잔여액 부족으로 전송되지 않았습니다"

한 달동안 내게 주어진 삼천개의 문자가 이미 바닥이 났다는 표시, 까놓고 말해 문자를 더 보내고 싶으면 요금을 충전하라는 거였다. 일년전 쯤 엄마는 내게 매달 날아오는 15만원 정도의 전화요금 청구서를 내보이며 남동생 명의로 휴대전화를 전환하고 정액요금제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더랬다.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를 보며 항상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했던 나는 순순히 그 속박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까짓거, 조금 덜 쓰면 된다는 처음의 안일한 생각과는 달리 정액요금제가 나에게 가져다 준 쓰라림과 은근한 패배감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잔여요금이 없다는 안내를 들을 때 마다 사회라는 커다란 피라미드 속에서 내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가를 가늠하며 그것에 납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휴대전화를 사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전체의 삼분지 일쯤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아픈 것이라면 칠색 팔색을 하는 내가 스스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는 것 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휴대전화를 통한 나의 대화는 숨소리 하나,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일일이 돈으로 환산되어 나에게(정확하게는 나의 부모님에게) 청구된다. 문제는 내가(정확하게는 내 부모님이) 가진 재화가 유한하다는 것. 따라서 어느 시점이 되면 나는 일상대화의 삼분의 일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민욱씨는 행복한가요, 라는 질문에 매사에 행복해하며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전하려던 찰나 잔여액이 모두 소진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순간 나는 불행해져버렸다. 다행히 나는 국립대에 적을 두고 있기에 전기와 물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요금 정도는 국가가 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은 더 이상 내 소통의 통로가 잠식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한 때 생활비가 궁하던 시절 버스타는 것 조차 두려워 벌벌 떨었던 때가 차마 잊혀지지 않아 얕은 지식에 근거하여 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이런 걸 의미하는 거지,라고 냉소적으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요금은 얼마간 다시 충전해 두었다. 조금 배알이 꼴리지만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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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04:33 2007/01/19 04:33
daily life l 2007/01/19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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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1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도록 아껴보내야겠군요.

    2007/01/19 17:24
  2. pnl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천개의 문자중에 단 한개도 오빠에게 보낸 건 없다는게
    더 슬프구나....

    2007/01/20 15:28
  3. 동치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려한 문체에 감동받았어요.~

    2007/01/20 16:39
  4. won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과는 별 관계 없지만 저 디카 생겼습니다...
    우하하하하

    2007/01/21 08:20
  5. 세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짓 핸드폰 따위 버려버려!

    2007/01/22 21:14
  6. 현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본주의란 그런 것. ㅎㅎ

    2007/01/23 01:20
    • 飛정상 2007/01/24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본주의의 일부분이 제가 겪은 일이 될 수는 있어도 제가 겪은 일이 곧 자본주의는 아니라서 사실 이런 식의 한탄이 조금 경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아,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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