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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 하워드 진, J.D. 샐린저... 요 몇달간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하나 둘 떠올려 본다. 2009년의 말미와 2010년의 초입에는 유난히도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았던 것만 같은데, 뉴밀레니엄이니 새천년이니 하고 떠들썩했던 것이 어언 10년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지금이 바로 천년의 종말처럼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동시에 읽고는 먹먹해져서 마치 한 핏줄처럼 여겨지는 그 세 작품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머리를 쥐어뜯었더랬지(결국 쓰지 못했지만). 오늘 네이버 메인에는 '소설을 쓴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샐린저의 1980년 모 일간지 인터뷰 기사가 떴었다. 그리고 어제는 준희언니가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과 내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고 말해주었다. 예전부터 설마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는, 새천년보다는 헌(?)천년에 좀 더 어울리는 인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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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남자가 있었어. 남자는 불상을 조각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나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 나는 쭉 지켜보고 있었어. 남자는 불상의 얼굴부분을 필사적으로 파나갔지. 그 남자가 누구이며 왜 거기에 있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불상의 얼굴은 퍼나갈수록 윤기를 더하고 그 표정이 바뀌었어. 분노에서 기쁨으로...슬픔으로...불상과 같이 남자의 얼굴도 변해갔어. 남자가 열중을 하면 할 수록 불상의 얼굴은 온화해지고 완성돼감에 따라서 아름답게 변화되었지. 그것은 숲의 사계 이상으로 재미있는 변화였어.

'사람의 얼굴은 참 이상하다...이렇게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게 있었다니...사람이란 참 재미있는거야.'

 그날 밤 이후로 내 탐구심은 인간에게로 쏠렸다네. 인간행동의 학문으로서의 내 경제학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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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다. 그것은 이 뛰어난 기억력 덕분이다. 하지만 나는 두렵다...

"오오모리군, 자네는 방금 말한 「일본 정부·정당의 쌀 수입자유화 반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예?"
"쌀 수입자유화 반대에 관한 자네 의견을 듣고 싶네."
"...교수님이 방금 말씀하신 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납니다."
"생각이 안난다는 건 모른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이상에 대해선 정말로 생각이 안납니다."

(중략)

"자네는 이 대학에 최고 점수로 입학했고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네. 다른 교수들도 자네에 대한 기대가 커. 그런 자네가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다니, 그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교수님은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건 「졸업논문」과 「졸업」입니다. 교수님은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전 대학에서 배운걸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초등학교때부터 남보다 기억력이 뛰어났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것에 대한 제 의견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어지고 사회로 떠밀리는 것이 무섭습니다. 인파속에 휩쓸리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전 이미 우등생이 아닙니다."
"기억력이 좋다는 건 훌륭한 일이야. 전에 기억한 것을 기초로 더 빨리 진보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은가? 자넨 뭐가 그리 싫은건가?"

(중략)

"그 미시마 유키오에 관해서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
"정말 느끼는 바가 없나?"
"없습니다."
"좋은가? 싫은가?"
"좋아합니다."
"어째서 좋아하나?"
"왜....왜냐면...그냥 주인공이 남 같지가 않아서..."
"음. 그게 바로 자네 의견이야."
"예?"
"자네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어. 그건 이미 과거에 기억한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닐세. 자네만의 자네 자신의 언어지. 자신의 언어가 있어야 비로소 남을 알 수가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가 있고, 새로운 발견을 할 수가 있고, 그리고 또 언어가 생기는 거야. 그럼으로써 자네의 지식이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되는게 아니겠나."


- 『천재 유교수의 생활』5권 中


몇 년 전부터 하선생님께는 카즈미 야마시타의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옆에서 늘 관심을 가져 주시고 학문을 하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여러모로 제시해 주시는 분은 하선생님이시지만, 학문이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마음에 드는 대답을 내려준 것은 이 한권의 만화책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만화책을 읽은 이후로 나는 학문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라는 컴플렉스에 줄곧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미있는 학문이란 내 자신만의 물음에 답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러한 물음들은 '매사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문 - 이라 쓰고 '특별한 애정'이라 읽는다 - 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생겨날진대,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나란 인간이 어떻게 학문을, 그것도 사회과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머리가 좋다, 어학에 소질이 있다 하는 것 이전에 따져봤어야 할 문제,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렸어야 할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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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엽편일기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인용문 때문에 제법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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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17:18 2010/01/30 17:18
daily life l 2010/01/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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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랑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홀든=애늙은이+복잡함+섬세함+알수없음+방황쟁이=남민욱

    2010/02/01 03:27
  2. 비밀방문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10/02/09 22:02
  3. 비밀방문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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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2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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