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아리방에 갔다가 잠시 시간이 남아 심심한 나머지 책꽂이나 서랍 같은 곳들을 뒤져보았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 공연때 쓰던 방명록, 동아리방에 늘 굴러다니던 막글장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부끄러워졌는가 하면, 전혀 알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는 물건들이 나와서 나를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 물건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나보다 선배인걸까, 아님 후배인걸까(나도 이제 학번이 학번인지라 후자쪽일 가능성이 거의 1에 가깝게 높을테지만 고집스럽게도 선배의 물품일거란 가능성을 굳이 배제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고는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등등. 그리고 후배들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벽에다 붙여 둔 신문기사나 낙서 따위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아 귀엽다, 청춘이야, 풋풋해 같은 생각을 하며 혼자 킬킬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뜨악하였다. 건방지게스리, 내가 나이를 몇이나 먹었다고 이리도 늙은이같이 구는거지. 심지어 서른 다섯도 아니고, 이제 겨우 스물 다섯 먹은 대학생이. 아니, 그것보다 나는 어째서 이리도 지치고, 늙어버린 기분이 드는거지.
정말로,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물론 몇 년 전에도 장난삼아 나이에 시옷 받침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벌써 중반에 접어 든 것이니 뭐니 하는 실없는 농담을 곧잘 하곤 했지만, 그래도 그 땐 나름대로 목표같은 것도 있었고 내일이 되면, 다음 달이 되면, 일본에 가게 되면, 하면서 특정한 순간들과 마주치게 되면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그런 기대를 한 것은 아마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비록10km 뿐이지만, 그래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무언가가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 남짓, 요 근래엔 하다못해 일기라도 꼬박꼬박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안하는 잉여인간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사흘 후면 나는 졸업을 한다.
졸업. 졸업, 하는 것이 과연 나 자신인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졸업, 하고 중얼거려보아도 하다 못해 방을 바꾸는 것이 더욱 충격적일 정도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것도 그러한 느낌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일까. 같은 건물, 같은 선생님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탓에 새로운 곳으로 간다기 보다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아하, 그러니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참 사람을 맥빠지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적어도 치열하게, 늘상 무언가를 바꿔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세계와는 다를테니까 말이야. 그러고보니 나도 일본에 막 도착했을 무렵이나, 몹쓸 녀석에게 된통 차이고 나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처럼 괴롭던 때엔 무서우리만치 열심히 살았더랬고, 지쳐서 헉헉대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더랬지. 결국 늙는다는 건 나이에 상관 없이 적응하고 안주하고 게을러지는, 다시 말해 타성에 젖는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문득, 돌아온 탕자는 쳐죽여야 한다고 했던 장정일과, 그 말에 감화되어 돌아온 탕자따윈 되고 싶지 않다고 훌훌 떠나간 선배오빠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daily life l 2009/08/25 20:36
정말로,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물론 몇 년 전에도 장난삼아 나이에 시옷 받침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벌써 중반에 접어 든 것이니 뭐니 하는 실없는 농담을 곧잘 하곤 했지만, 그래도 그 땐 나름대로 목표같은 것도 있었고 내일이 되면, 다음 달이 되면, 일본에 가게 되면, 하면서 특정한 순간들과 마주치게 되면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그런 기대를 한 것은 아마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비록10km 뿐이지만, 그래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무언가가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 남짓, 요 근래엔 하다못해 일기라도 꼬박꼬박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안하는 잉여인간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사흘 후면 나는 졸업을 한다.
졸업. 졸업, 하는 것이 과연 나 자신인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졸업, 하고 중얼거려보아도 하다 못해 방을 바꾸는 것이 더욱 충격적일 정도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것도 그러한 느낌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일까. 같은 건물, 같은 선생님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탓에 새로운 곳으로 간다기 보다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아하, 그러니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참 사람을 맥빠지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적어도 치열하게, 늘상 무언가를 바꿔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세계와는 다를테니까 말이야. 그러고보니 나도 일본에 막 도착했을 무렵이나, 몹쓸 녀석에게 된통 차이고 나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처럼 괴롭던 때엔 무서우리만치 열심히 살았더랬고, 지쳐서 헉헉대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더랬지. 결국 늙는다는 건 나이에 상관 없이 적응하고 안주하고 게을러지는, 다시 말해 타성에 젖는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문득, 돌아온 탕자는 쳐죽여야 한다고 했던 장정일과, 그 말에 감화되어 돌아온 탕자따윈 되고 싶지 않다고 훌훌 떠나간 선배오빠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돌아온 탕자는 쳐 죽여야 하는 거군요... 다행히 제 주변 사람들이 착해서 아직 안 죽은 거구나.
2009/08/27 11:30저는 '탕자'가 될만한 깜냥도 없는걸요 허허;;
스물다섯이 심리적으로 가장 조로하는 나이 같아요.
2009/08/28 01:55사실은 젊은 나이인데 이상하게도
마치 자신이 노회한 정객처럼 느껴져요. 대학 안에선.
괜찮아요. 서른까지 5년이나 있잖아요.
네.. 그리고 몇달 후면 무려 '10'학번이 들어오겠죠. 으흑,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대학에 남아 결국 이 꼴을 보고야 말다니,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고 있습니다. 네에, 그래도 서른까지 5년이나 남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5년 후의 저는 좀 더 멋있어질거예요. 꼭 그렇게 될거예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9/08/30 10:54대단하다, 는 말 말고는 해 줄 수 없는 나를 용서하렴. 그래도 정말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만큼 너의 앞날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해. 너도 나도 너와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사람들도, 모두 힘내자꾸나. 감기조심해 :)